어성초라는 낯선 이름을 미국 소비자가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흙냄새가 난다는 후기가 오히려 화제가 되면서, 아누아의 어성초 토너는 ‘K-허브’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토너 하나를 앞세운 운영사 더파운더즈의 매출은 2023년 1,432억 원에서 2025년 7,176억 원으로, 2년 만에 다섯 배가 됐습니다.
제품 이름보다 성분 이름이 먼저 알려지는 일이 요즘 뷰티 시장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ONB랩이 브랜딩 에이전시의 시각으로, 성분 하나가 어떻게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지, 그리고 그 방식을 따라 하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짚어봅니다.
성분표를 먼저 읽는 소비자
성분이 브랜드보다 앞서는 흐름의 바탕에는 소비자의 습관이 바뀐 사정이 있습니다. 화장품을 고를 때 광고를 보기 전에 성분표부터 확인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화해 같은 앱에서 전성분을 뜯어보고, “6개월 뒤에도 효과가 있을까”를 먼저 따지는 검증소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화해가 내놓은 2026 트렌드 리포트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최소한의 단계로 최대 효과를 내는 고기능 미니멀리즘, 그리고 저자극·진정 성분과 검증된 무해성을 앞세운 안심 진정 뷰티가 핵심으로 꼽혔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소비자의 검색어입니다. 나이아신아마이드, PDRN, 레티놀처럼 성분명에 제품명을 붙여 검색이 점점 잘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검색하던 소비자가 이제 성분을 검색합니다.
이 변화는 브랜드에게 기회이자 숙제입니다. 성분이 먼저 소비자의 언어가 된 시장에서는, 성분 하나를 얼마나 또렷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가 곧 브랜드의 자리를 정합니다. 아래 세 브랜드가 그 자리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잡았습니다.

성분이 브랜드가 되는 세 가지 방식
숫자만 보면 셋 다 성분을 앞세워 컸지만, 성분을 다루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그 차이가 곧 전략의 실체입니다.
하나의 성분에 전부를 건다
아누아는 어성초라는 한 성분에 브랜드의 무게를 실었습니다. 대표 제품 이름부터 ‘어성초 77% 수딩 토너’입니다. 함량 숫자를 제품명에 그대로 박아 넣은 셈입니다. 진정에 좋다는 어성초를 축으로 클렌징 오일, 세럼으로 라인을 넓히면서도 ‘어성초 브랜드’라는 인상은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약점처럼 보이던 요소를 정체성으로 바꾼 대목입니다. 특유의 허브 향과 흙냄새는 호불호가 갈리는 특징이었는데, 아누아는 이를 감추는 대신 ‘K-허브’라는 서사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미국 뉴뷰티가 뽑은 2025년 100대 뷰티 브랜드에 국내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성분을 좁게 잡을수록 브랜드가 또렷해진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줍니다.

성분의 출처가 곧 서사가 된다
스킨1004는 조금 다릅니다. 이 브랜드가 앞세운 것은 병풀이라는 성분 자체가 아니라, 그 병풀이 ‘어디서 왔는가’입니다. 대표 제품은 ‘마다가스카르 센텔라 앰플’입니다. 진정 성분으로 익숙한 시카(센텔라)에 마다가스카르라는 원산지를 붙여, 같은 성분이라도 더 순수하고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원산지가 품질의 근거가 되자 숫자가 따라왔습니다. 이 앰플은 누적 판매 1,000만 개를 넘겼고, 브랜드 매출은 한 해 만에 321% 늘어 2,8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미국 코스트코 400여 개 매장과 타깃에도 들어갔습니다. 다시 보면 이것은 성분 전략이라기보다 내러티브 전략입니다. 성분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성분에 이야기를 붙이는 브랜드는 드뭅니다.

성분명이 검색어이자 제품명이 된다
토리든은 성분명을 유통 채널처럼 씁니다. 대표 제품은 ‘다이브인 저분자 히알루론산 세럼’입니다. 소비자가 ‘히알루론산 세럼’을 검색하면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도록, 성분명을 제품의 얼굴로 내세웠습니다. 실제로 이 세럼은 올리브영 세럼 카테고리 상위권을 오래 지켰습니다.
여기서 성분명은 카피이자 검색어입니다. 광고로 이름을 알린 뒤 매장으로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이미 검색하는 성분어 위에 브랜드를 얹는 방식입니다. 검증소비가 만든 검색 습관을 채널로 바꾼 셈입니다. 성분을 소비자의 언어로 정확히 옮겨 적은 브랜드가, 그 언어가 검색되는 만큼 발견됩니다.
따라 하기 전에 확인할 세 가지
문제는 이 전략이 겉모습만 베끼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잘나가는 성분 이름을 제품명에 붙이는 일은 누구나 오늘 당장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증소비에 익숙한 소비자는 성분표를 열어 함량과 순서를 확인하고, 근거 없는 성분 마케팅을 빠르게 걸러냅니다.
그래서 성분 브랜딩을 검토한다면 세 가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첫째, 그 성분이 실제로 다르거나 최소한 다른 이야기를 가졌는가입니다. 함량이든 원산지든 배합이든, 소비자가 확인했을 때 납득할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한 성분으로 몇 년을 밀 수 있는가입니다. 라인을 넓힐 때도 그 성분이 중심축으로 남아야 브랜드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셋째, 성분을 소비자의 언어로 번역했는가입니다. 성분표의 화학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검색하고 말하는 이름으로 옮겨야 발견됩니다.
성분이 아니라 신뢰를 판다
성분 하나로 큰 브랜드들이 실제로 판 것은 성분이 아니라 신뢰였습니다. 어성초, 병풀, 히알루론산은 이 브랜드들만 쓰는 원료가 아닙니다. 같은 성분을 두고도 어떤 브랜드는 함량을 이름에 적었고, 어떤 브랜드는 출처에 이야기를 붙였고, 어떤 브랜드는 소비자의 검색어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분은 같아도 그 성분을 다루는 태도가 브랜드를 갈랐습니다.
지금 뷰티 브랜드를 키우는 입장이라면, 질문은 “어떤 성분이 요즘 뜨는가”보다 조금 앞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가진 성분에 소비자가 확인하고 납득할 이야기가 있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몇 년 동안 같은 얼굴로 지킬 수 있는가. 성분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은 성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성분을 끝까지 책임지는 브랜드가 드물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